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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이야기/호주 바리스타

[호주바리스타] 나의 바리스타 이야기

by Ley's review 2019. 12. 11.

처음 호주에 갔을 때 나의 경력 : 한국 프랜차이즈 카페 6개월,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5-6년

 

학교를 다니면서 할만한 일에는 서비스직이 제일 나을 거 같았고 그동안의 경력도 있었기 때문에, 카페 레스토랑 등의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초반에는 한두 달 가까이 모든 서비스직 경력을 넣은 이력서를 열심히 넣었지만, 정말 한 군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서비스직 경력만 있으면 될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호주에서의 경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하는 나의 추측.

 

그땐 정말 모든 곳에 이력서를 끊임없이 그냥 막 넣었었다. 이전에 공고에 넣었던 회사인데 새로 공고가 올라오면 또 넣고, 같은 공고인데도 두 번 세 번 넣고, 어차피 난 잃을 게 없으니까(?)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정말 아무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넣었던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왔다. 카페라고 하기엔 너무 커피가 주가 아니라서.. 커피 만들 기회도 얼마 안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너무 멀었고, 시급과 시간이 너무 적어서 2-3일 정도 일하고 그만두었다. 4-5시간을 일하기 위해 통근 시간만 2시간, 그리고 1시간 시급은 교통비로 끝나니. 남는 게 없었다. 

 

그 후에 다행히도, 학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은 조금 특이해서, 오전엔 대부분 테이크어웨이 하는 커피가 주이고, 11시 반쯤부터는 점심 테이크어웨이가 주인, 카페 겸 레스토랑이었다. 어쨌든 테이크어웨이가 주라서 일이 많이 힘들지도 않았지만, 빠르게 서비스만 할 수 있다면 문제는 없었다. 

 

한국에서 커피를 만들어본 경험은 있지만, 호주의 카페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든 것이 처음인 게 많았다. 수동 그라인더부터 그들이 사용하는 커피 머신, 템퍼링 하는 법, 우유 스팀 하는 법 등등. 하필 한국에서의 경력이 늦봄~늦가을까지라서.. 아이스 음료만 주구장창 레시피 외워서 만들었던 내게, 우유 스팀만 내리 해야 하는 호주 커피는 정말 신세계였다.

 

호주인들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냥 일 년 내내 따뜻한 커피를 즐겨 마신다. 그리고 어제는 단 게 당겨서 바닐라 라떼, 오늘은 깔끔하게 마시고 싶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한국인과 달리.. 그들은 일 년 내내 본인이 좋아하는 딱 한 가지 종류의 커피를 매일 마신다. 

그곳에서 일한 지 1개월, 2개월.. 지나면서 멀리서 손님이 오는 모습을 보면, 어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인지 알고 커피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인을 알아봐 주고 메뉴를 기억하며 바로바로 커피를 만들어주면 손님들도 좋아하고, 나도 뿌듯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다 보니, 어느새 우유 스팀도 손에 익어 개거품을 만들어서 숟가락으로 개거품을 막고 커피를 만들던 초반과 달리.. 실키하고 부드럽고 딱 알맞은 온도의 우유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나니.. 초반에 내 커피를 마셨던 단골손님들께 정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졌었다 ㅋㅋㅋ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면서도 나는 이력서 넣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전처럼 계속해서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지는 않고, 큰 회사들이 운영하는 카페나 프랜차이즈 위주로 이력서를 넣었다. 왜냐하면, 큰 회사나 프랜차이즈는 Fairwork에서 권고하는 최저임금을 맞추어 주고, 회사마다 다르지만 각종 수당과 패널티 등이 적용이 되어서 주급을 주기 때문에,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는 것과 주급의 차이가 많이 크다. 

 

그러던 중 정확히 6개월쯤 후에, 6-7번쯤 지원을 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인터뷰 후에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하던 카페에서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해서 2-3개월가량 투잡을 뛰다가 그 카페가 문을 닫으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 일하게 된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는 큰 회사였다. 

 

그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학기 중에는 20시간, 방학중에는 무제한으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캐주얼로 일을 하였다. 그리고 사실 많은 서비스직이 대부분 캐주얼로 고용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일하는 시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손님이 많은 시즌엔 일하는 시간을 더 주고, 손님이 없을 때는 시간을 덜 주기 위해서. 

 

그곳에서 나는 학기 중에는 토. 일요일에만 20시간을 일하면서, 그전에 일했던 카페보다 2.5배 이상을 벌었다. 

 

워낙 바빴던 카페라서, 오전에만 7-8kg 이상의 커피빈을 사용하는 곳이었기에, 라떼아트를 만들 시간조차도 없었다. 되도록 빨리 만들어서 내보내야 했기에. 하지만 우유 스팀과 커피 샷에는 정말 공을 들여서 최고의 퀄리티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정말 최고의 커피라는 찬사를 많이 들었다. 

 

뭐든 시작이 어렵다고 했던가..

그렇게 이년을 넘게 그곳에서 일을 하고, 그 카페가 문을 닫게 되면서 주변에 있던 다른 가게들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지켜 보고 있었던 다른 매니저들이 내가 일하던 곳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네 회사로 오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시작은 그렇게 어려웠고, 그 7-8개월 되는 초기 구직 기간 동안 나는 족히 500개의 이력서는 돌렸는데, 이제는 이력서도 내지 않은 곳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오다니.. 

 

그렇게 다른 회사로 옮겨 한참을 일한 후, 이후에도 3-4번의 이직을 하였지만 바리스타로서의 이직이 많이 힘들진 않았다. 그쯤 되니 공고를 보고 회사를 찾아보고 이 회사가 괜찮은 회사인지 평은 어떤지 찾아보고 골라가며 이력서를 넣었고, 이력서를 넣은 곳은 대부분 연락이 금방 왔다. 

 

꼭 바리스타 자리뿐만 아니라, 호텔 레스토랑, 공항 카페 레스토랑, 세일즈 등등 비슷한 자리로는 쉽게 옮겨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경력이 쌓이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슈퍼바이저, 매니저로의 승진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설렁설렁 일하며 시간 때우다 가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지만, 그 친구들은 몇 년이 지나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물론 입만 살아서 입으로만 일하고 그렇게 승진도 잘하는 친구들도 어딜 가나 하나쯤은 꼭 있다.)

 

바리스타라고, 꼭 커피만 만들지는 않는다. 시간이 날 때는 주변 정리를 하며, 설거지도 해야 하고 (물론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씻어서 넣어야 하므로), 박스를 뜯어 각종 물품들도 채워 넣고, 빈자리 정리도 하고 그냥 그곳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한다. 커피를 하루에 수백 잔씩 만들다 보면 손목도 나갈 거 같고 어깨도 아프고 다리고 아프기 마련이다. 아직도 비오기 전날엔 손목이 쑤신다..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카페에 손님으로서만 가는 현재의 난, 행복하다 ㅋㅋㅋㅋㅋ

 

바리스타를 생업으로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멋지다. 그리고 그들의 커피맛은 당연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바리스타가 그 레벨까지는 갈 수 없으므로... 나 같은 바리스타도 존재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계를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다. 나는 체력적으로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 일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고, 원래 공부했던 분야도 다른 분야였으므로 이제는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젊은 한때,  행복했고 즐거웠던 추억이다.